Life

고시 6번 떨어지고, 30대 신입 웹 개발자가 되는 이야기 (完)

softserve 2022. 9. 5. 23:35
반응형

첫 번째 이야기

1. 뭘로 먹고 살아야 할까?
2. 웹 개발? 백엔드? 프레임워크? API?
3. SI는 안 된다고? IT 회사의 종류

두 번째 이야기

4. 학원을 꼭 다녀야 할까?

세 번째 이야기

5. 썼노라, 보았노라, 떨어졌노라

6. 얼떨떨한 합격, 그리고 중소인의 삶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것

취업은 99패 끝에 1승만 해도 성공이라는 이야기를 흔히 합니다. 나를 받아주는 회사가 어디엔가는 있을 것이고 결국 내가 다닐 수 있는 회사는 하나뿐이기 때문에 서류나 면접에서 몇 번 떨어졌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머리로는 이렇게 생각을 해도 공들여서 지원을 했는데 막상 불합격이라는 결과를 받게 되니 상처가 되더라구요. 간절한 마음이 클수록 떨어졌을 때의 충격도 큰 법...

면접관들은 취준생들이 회사에 대한 세밀한 조사나 최적화없이 자소서를 복붙 하는 것에 대해 볼멘소리를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어쩔 수가 없어요.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며칠 밤을 새워가며 준비를 해도 떨어질 수가 있고 급하게 30분 써서 내도 붙을 수가 있으니까요. 몇 분 훑어보고 던져질 자소서에 영혼을 갈아넣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업 조사, 전략 수립, 나만의 이야기 창작 이런 것들이 필요하긴 하지만 회사 하나에 너무 힘을 빼지는 않는 게 좋겠다고 느꼈습니다. 매일같이 공고를 파헤치고 일주일에 한 두 개씩 지원을 했더니 떨어질 때마다 타격이 오더라구요.

처음에는 소박하게 '연봉 3000만 원 이상 집에서 1시간 내외 거리의 비 si 회사'가 목표였는데 이것도 쉽지가 않더군요. 해가 바뀌고 마음은 조급해지고 연이은 실패에 지친 나머지 저는 조건 따지지 않고 마구 지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은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의 작은 회사를 발견해서 지원을 했습니다. 2시간쯤 지나서 연락이 왔고 다음 날 면접을 보러 갔다가 사장님의 자기 어필, 키워주겠다는 호언장담만 듣다가 돌아왔습니다. 처음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받은 것 같아 기분은 좋더라구요.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지만 더 이상 이런 생활을 이어나갈 수 없다고 생각해 합격을 하면 열심히 다녀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연락을 주겠다던 사장님은 연락이 없었고 저는 이런 회사도 나를 원하지 않는 건가 하며 절망에 빠졌죠. 이때가 취준생 생활 중에 가장 힘든 시기였어요.

다시 마음을 추스른 저는 구직활동을 재개했고, 채 한 달이 지나기도 전에 지금 회사에 합격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편하게 본 면접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당일 합격에 얼떨떨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지요.

제가 처음 생각했던 조건에 딱 부합하는 곳이었습니다. 남들한테 자랑할 만큼 유명한 곳은 아니지만 하루하루 만족하면서 즐겁게 다니고 있어요.

저는 이렇게 어렵게 취직을 했는데 "그냥 한 번 면접을 봤는데 붙어버렸다" 라고 말하는 동료의 이야기를 들으니 뭔가 맥이 빠지더군요. 근 10년 동안 워낙 취업문이 좁아진 탓에 취업이 몹시 어렵고 대단한 일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취업은 근본적으로 운칠기삼입니다. 진부한 말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기회는 옵니다. 여러분의 1승을 기원하겠습니다.

어서와 좋소는 처음이지?

우리나라 기업 중에 99%가 중소기업이라고 하죠. 모든 취준생의 목표는 대기업일 테지만 저처럼 취업이 급하신 분들로서는 마냥 대기업만 고수하기란 힘든 일입니다. 잘 찾아보면 중소기업 중에서도 좋은 곳들이 제법 있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제가 중소기업에서 일하면서 느낀 장단점에 대해 얘기해볼까 합니다.

"체계가 없다."

잡플래닛 리뷰에서 가장 많이 본 말인 것 같아요. 주로 중소기업 리뷰에는 빠지지 않더군요. 당시에는 이해를 못 했는데 다녀보니 확실히 공감이 됩니다. 대기업은 대부분의 절차가 이미 정해져 있고 명확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리라 생각되는데, 중소기업은 대부분 막상 일이 닥치고 나서 한 두 사람의 결정으로 일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신입 직원이 입사했을 때, 대기업은 정해진 절차대로 연수를 받고 실무에 투입되지만 중소기업의 경우는 선배들도 뭘 가르쳐줘야 할지 모르고 신입도 뭘 해야 될지 모르는 그런 상황이 벌어지곤 합니다.

이게 꼭 단점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 미리 정해진 체계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자유롭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점점 체계가 정립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회사와 함께 성장하는 느낌을 받기도 하죠.

"회의가 많다."

이것도 체계 없음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회의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정작 일할 시간이 부족한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업무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곤 해요.

"이것저것 다 하게 된다."

큰 회사는 업무가 모두 세분화되어 있지만, 작은 회사는 한 사람이 이것저것 다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한 분야의 전문성을 키우는 것이 커리어에 유리하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서 조금 걱정이 되긴 합니다. 막상 회사에 다녀보니 퇴근하고 나서 또는 주말에 공부를 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더라구요. 회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개인 공부도 중요하지만 어떤 업무를 하느냐가 앞으로의 진로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양한 일을 경험해볼 수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다재다능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물론 여러 분야를 간만 보는 정도로 지나쳐서는 의미가 없고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겠죠...

"연봉과 복지"

아마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싶은데 이것만큼은 큰 회사들과 비교하기가 어렵습니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 수준의 연봉과 복지를 제공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대신 중소기업은 나라에서 제공하는 복지 혜택이 제법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내일채움공제, 소득세 감면, 중소기업청 전세대출 등이 있죠.

결론

당연히 갈 수 있으면 대기업, 네카라쿠배에 가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가고 싶다고 모두 갈 수는 있는 건 아닙니다. 누군가는, 아니 대부분은 떨어지겠죠. 대기업에 가려고 1년을 더 허비하느니 경력과 실력을 쌓아서 중고 신입이나 경력직을 노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첫 직장이 중요하다는 얘기에 저도 계속 취업을 망설였습니다. 확실히 임금격차가 큰 편이고, 이직과 커리어에 전 직장이 미치는 영향도 크니 많은 사람들이 좋은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서 박 터지게 싸우는 거겠죠. 하지만 개발자는 실력에 비례해서 대우를 받을 수 있고, 이직하면서 몸값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3~4년 정도 중소기업에서 일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마치며

오랜 기간 백수였던 입장에서 저는 지금 받는 연봉이 그리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고 싶은 거 다 사고 먹고 싶은 거 다 먹어도 돈이 남아서 저축까지 하고 있으니까요. 모아둔 돈을 조금씩 까먹거나, 부모님께 용돈을 타쓰거나, 알바비를 아껴가며 생활하는 것과 직장인의 삶은 차원이 다릅니다.
경제적인 안정감, 미래에 대한 불안감의 해소, 취미생활을 즐길 여유, 회사에서 하는 업무마저도 재미있고 좋아요. 진작 취업을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몇 년이나 공부를 했는지 후회가 밀려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실패를 맛보고 인생의 밑바닥을 찍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남들과 경쟁을 하기보다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자고 마음먹었어요.
화장실 들어갈 때 하고 나올 때 다르다고, 이제 등 따시고 배부르니 점점 주변이 보이고 남들이랑 비교를 하게 되고 회사에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아직까지는 행복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어요.

원래 이렇게까지 길게 쓸 생각은 아니었는데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지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중언부언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느라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이 묻힌 것은 아닌가, 쓰고 싶었는데 잊어버린 말이 더 있진 않나 하는 생각에 마침표를 찍기가 어렵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