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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개발자의 첫 직장, 중요한가?

by softserve 2023.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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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첫 직장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아니?"

 

가뜩이나 힘든 취준생들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만드는 말입니다.

첫 직장이 중요한 것은 임금 격차나 복지 혜택의 차이뿐 아니라 커리어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소기업에서 경력을 쌓아서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나 현실적으로 이직에 성공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은 반면, 대기업 경력 한 줄이 다른 회사로 옮기는 데에는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연봉 협상을 할 때 직전 연봉을 기준으로 삼기도 합니다. 학벌의 중요성은 점점 낮아지고 있지만 대신 '경력'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면서 그 사람의 시장 가치를 결정하는 잣대가 됩니다.

대기업일수록 직무가 세분화되어 있어 전문성을 쌓기 쉽고, 충분한 인력과 체계는 자기가 맡은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므로 직원의 성장에도 도움이 됩니다. 이 또한 취준생들이 중소기업 취업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개발자는 실력만 있으면 된다?

 

개발 직군은 실력을 쌓아서 이직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있다는 점에서 조금 더 상황이 낫습니다. 1년마다 회사를 옮겨서 좋은 곳으로 가신 분도 종종 발견되니까요(일반적으로 짧은 재직기간은 마이너스 요소가 되므로 함부로 따라하지 마세요!). 하지만 첫 직장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신입 개발자가 실력을 쌓는데 회사가 기여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더 중요하다고 볼 수도 있죠.

치열한 경쟁과 여러 단계의 복잡한 채용 절차를 거쳐 '좋은 회사'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상대적으로 취업 난이도가 낮은, '덜 좋은 회사'를 선택했을 때 치러야 하는 대가를 2년차 중소기업 개발자 입장에서 살짝 알려드릴까 합니다.

 

지금 회사에서 사용하는 기술과 다음 회사에서 요구하는 기술이 다를 수 있다

 

처음 개발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어떤 언어, 프레임워크를 공부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많이 합니다. 그러면 보통 많이 쓰는 자바 스프링 하세요 라는 답변이 나오죠. 소수 기업에서만 사용하는 스택을 가지고 있으면 굉장히 선택지가 줄어들게 됩니다. 본인이 특정 기술에 관심이 있고 명확한 진로를 꿈꾸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안전한 길을 가는 것이 낫습니다.

현 직장과 옮기려는 곳의 기술 스택이 일치하지 않으면 그만큼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안 써본 언어라도 한 두 달 정도만 배우면 잘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고 실제로 그 정도 실력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증거가 없죠. 적어도 몇 개월의 시간을 투자하여 결과물을 내야 비로소 나만 알고 있는 나의 잠재력을 타인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는 여지가 생기게 됩니다. 회사 입장에서 지원자의 잠재력이란 평가하기 어려운 요소이기 때문에 아직 합격을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경력 채용에서는 기본기나 자신감, 패기보다 경력이 더 중요한 법이니까요. 일단 뽑아만 주면 잘할 수 있다는 사람보다는 실제로 실무에서 사용해 본 경험이 있는 지원자에게 마음이 기울 겁니다.

그런데 개발자들이 선호하는 기술 스택을 사용하지 않는 기업들이 꽤 많습니다. 컴퓨터 기술의 발전 속도는 매우 빠른 반면, 이를 사용해서 수익 사업을 하고 있는 기업들의 변화 속도는 느립니다. 이미 안정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굳이 돈과 시간을 들여서 새로운 기술로 바꿀 필요가 없는 거죠. 기업의 입장에서는 타당하나, 직원 입장에선 난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대기업이나 금융권에서는 이미 높은 수준의 연봉을 제공하기 때문에 개발자로서의 성장을 일정 부분 포기하더라도 만족하고 다닐 수 있지만, 영세기업에서 낡은 기술 스택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은 현재 회사에 뼈를 묻을 수는 없으니 이직 준비와 개발 공부를 계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추고 자금적인 여유가 있는 IT 기업들은 새로운 기술에도 열려있고 업무를 통해 습득한 지식과 경험이 곧바로 이직할 때에도 큰 도움이 되므로 가급적이면 이런 기업에서 커리어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작은 회사의 업무 범위는 넓고 얕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좁고 깊은 경험이다

 

회사가 작을수록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일이 많아집니다. 저는 이제 2년 차임에도 백/프론트 구분 없이 새로운 기능 개발을 하고, 서버 세팅에서부터 고객문의에 따른 기술지원 및 트러블 슈팅까지 모두 혼자서 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좋은 경험이라고는 생각하지만 당장 이직을 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큰 회사에서는 쇼핑몰 장바구니 하나를 한 팀이 맡아서 개발한다고 합니다. 퍼블리셔, 프론트엔드 개발자, 백엔드 개발자, DBA, QA들이 각자 맡은 분야에서 열심히 일을 합니다. 이렇게 되면 혼자서 모든 것을 맡아서 할 때와는 시각 자체가 달라집니다. 제가 열심히 구글링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프로그램이 굴러가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쿼리를 짜고 화면에는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을 때, 저들은 성능 향상을 위해 DB 튜닝을 하고 대용량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적절한 테스트 코드를 작성하며, 어떤 새로운 기술이 도입할만한가를 논의하게 되는 거죠.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말은 뒤집어 말하면 어느 것도 제대로 못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1, 2년차 풀스택 개발자란 사실상 잡부에 가깝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 직원들이 당장 필요한 업무를 잘 수행해주길 바랍니다. 따라서 회사에서 가르치고 강조하는 것이 정작 내 커리어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회사라는 우물 안에서 개구리처럼 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도태되어 어디로도 갈 수 없게 되고 맙니다. 한 우물을 파는 것도 좋지만 자기가 판 우물에 갇히는 우를 범하지는 않아야 할 것입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배운 것들을 정작 회사에서는 써보기가 힘들다

 

회사에서 사용하지 않는 기술이라도 혼자 공부하고 개인 프로젝트 좀 해보면 이직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마련인데, 회사에서 여러 사람이 하루 8시간씩 수 주에서 수개월을 투자해 만든 결과물을 혼자서 남는 시간에 뚝딱뚝딱 만들어보려고 하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를 일입니다.

내가 공부한 내용을 회사 업무에 적용해 봤더니 실제 성과가 나타난다면, 또는 예상치 못했던 부작용이 있어서 고생을 해봤다면 학습 능률과 동기 부여가 배가되겠죠. 그야말로 돈도 벌고 학습도 하고 경력도 쌓는 겁니다. 반면, 일은 일대로 하고 이직을 위해 퇴근 후에 따로 공부를 하는 것은 연비가 상당히 떨어지는 일입니다. 단순히 이론적인 지식만 습득하는데 그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내가 다니는 회사의 기술 스택과 업무 범위가 중요하게 됩니다. 회사에서 경험하고 느낀 것들이 곧 내 경력이 되는 법인데, 그 경력이 다른 회사에서 인정해주지 않는 내용의 것이라면 소위 말하는 '물경력'을 쌓고 있는 겁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그렇다면 '네카라쿠배' 같은 '좋은 회사'에 들어가지 못한 우리의 이번 생은 망한 걸까요? 그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비록 남들만큼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지라도, 실력만 있으면 기회가 열려있다는 것만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비전공자로 시작해 국비 학원과 si 회사를 거쳐서 좋은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개발자 분들이 많습니다. 원하는 회사에 가기엔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면, 기술 스택이 비슷한 다른 회사를 거쳐서 가는 것도 방법입니다.

개인적으로 6개월 ~ 1년 정도는 좋은 회사에 취업하기 위해 투자할만 하다고 봅니다. 마냥 자포자기하고 쉬운 길을 가는 것보다는 어려운 길을 가보는 것도 앞으로의 인생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너무 길어진다 싶으면 어느 정도는 현실과 타협을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가능하다면 좋은 회사에 가는 것이 좋겠지만 고시 시험 보듯이 2, 3년씩 준비한다고 네카라쿠배에 갈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오히려 취직 자체가 점점 더 힘들어지니까요. 

그렇게 '덜 좋은 회사'로 가게 된다면 적어도 내가 궁극적으로 가려는 길과 방향성이 맞는지 정도는 확인을 해야합니다. 비포장도로를 달리게 되더라도 목적지를 향해야지, 방향이 한 번 틀어지면 목적지와는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지나온 길을 자주 돌아보며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점점 목적지가 멀어지는 것이 보이면 과감히 뛰어내릴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갈아탈 차가 근처에 있는 지는 먼저 알아보고 뛰어내려야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뛰어내렸다가 허허벌판에서 길을 잃고 마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요즘 같은 취업 빙하기 시대에는 길바닥에서 얼어 죽기 십상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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